근둥이의 블로그

노자

Ⅴ. 무위자연 – 작위하지 않는 유유자적함

 

노자는 “도道는 항상 무위無爲하지만 그에 의하여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없다”고 하였다. 천지만물 중 어떤 것도 도道 없이는 존재하고 움직일 수 없다는 점에서 보면 도는 무불위無不爲하다. 그러나 그러한 도道에는 어떠한 의지나 목적도 없다는 점을 본다면 도道는 무위無爲하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으며,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이처럼 도는 하늘, 땅, 사람이 모두 본받아야 할 무엇이다. 그런데 이러한 도가 무위하다면, 인간이 표준으로 삼을 규범이 결국 무위인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노자가 말하는 자연 개념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것은 자연 현상이나 자연계의 사물과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한자 의미 그대로의 “스스로 그러한” 혹은 “자연스러운” 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인간, 땅, 하늘, 도의 본성이 바로 자연인 것이다. 여기서 원문에서 ‘道法自然’을 보고 자연이 도보다 존재론적으로 더 상위에 있는 실체로 여기는 오류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도의 성품은 자연하니 본받을 것이 없다.”라는 하상공의 말을 생각해볼 때, 자연은 도의 본성이며, 도보다 존재론적으로 상위의 실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1. 자취를 남기지 않는 다스림

노자는 인간이 추구해야할 행위인 도의 무위한 성질을 나라를 다스리는 원리로도 적용하였다.  먼저 그는 유가의 예치, 법가의 법치, 묵가의 겸애 모두를 인위의 정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노자는 인위의 다스림을 반대하고 무위의 다스림을 주장하였다. 통치자가 권위적인 방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리게 되면 백성들의 부담은 늘어나고, 그러한 부담은 백성들의 의욕을 잃게 만든다. 그러한 경향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로 이어질 수도 있다. 노자는 이처럼 통치자가 권위적인 다스림은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킬 뿐이라고 생각했다. 예로써 다스리는 것, 또는 인의로 다스리는 것도 인위라고 생각했다. 노자는 바른 사회라면 인의나 효자, 충신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마치 태양이 떠 있을 때 횃불이 의미 없는 것과 같다. 인의와 같은 도덕은 대도가 무너진 뒤 있게 되는 것이니, 이는 마치 몸이 병든 뒤에 약이 쓰이게 되는 것과 같다. 결국 처음부터 대도가 무너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주장한 무위의 다스림이란 어떤 것일까?

가장 좋은 통치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 다음의 통치자는 그를 친하게 여겨 칭송하고, 그 다음은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하며, 가장 나쁜 통치자는 백성들이 그를 경멸한다.

여기서 친하게 여겨 칭송하는 통치자는 은혜를 베풀고 덕으로 다스리는 유가적인 정치를 하는 사람인 듯하다. 또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통치자는 형법을 만들어 다스리는 법가적인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경멸하는 통치자는 번다한 금령禁令으로 다스리는 통치자이다. 그러나 노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다스림은 통치자가 있는지조차 모르도록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한 다스림은 나라가 안정기이든 혼란기이든 자연의 변화에 맡기고 따르는 것이다. 이렇게 다스리려면 통치자에게는 높은 인격이 필요하다. 노자는 높은 덕을 지닌 사람을 성인이라고 불렀다. 노자가 보기에 높은 덕을 지닌 사람은 목적이나 고의 없이 자연에 따라 행할 수 있다. 노자는 바로 이러한 사람을 성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노자는 “성인은 자기의 고정관념이 없이 백성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는다”고 하였다. 백성의 마음으로 자기 마음을 삼는다는 것은 곧 사사로운 감정 없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에 말했던 도의 특징인 현묘한 덕을 가진 사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는 행동으로 사람들이 따르게 할 수 있다. 이를 불언지교不言之敎라 한다. 결국 노자가 말하고자 한 다스림은 통치자가 백성들을 간섭하거나 지배하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따르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물 흐르듯 자유로이 살아감

노자는 인간이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을 이상적으로 본다. 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스러운 본성에 따르는 것은 곧, 사람이라면 사람의 자연스러운 성향에 따르고, 사물이라면 그 사물의 자연스러운 성향에 따르는 것이다. 또한 자연에 따르는 것은 일의적一義的인 의미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물이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글어지고, 모난 그릇에 담기면 모나게 되듯이 말이다. 결국 자연에 따른다는 것은 물 흐르듯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노자는 자연에 따라 자유자재로 살아가는 것을 이상시하였다.


Ⅵ. 참고문헌

이강수, 『노자와 장자』, 길, 2005
풍우란, 『중국철학사(상)』, 박성규 옮김, 까치글방, 2004
윤재근, 『편하게 만나는 도덕경』, 동학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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