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둥이의 블로그

끌로드 레비-스트로스

3. 레비-스트로스의 철학

 

레비-스트로스는 철학자이기 이전에 인류학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메타과학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레비-스트로스를 철학자로서 살펴볼 수 있다. 메타과학은 근대에 들어와 좁은 의미의 철학과 여러 실증 과학들로 분리된 철학을 일컫는 용어이다. 여기서 메타과학은 ‘과학에 대한 철학’, ‘과학 바깥의 철학’, ‘과학에 의한 철학’-세 가지로 나누어져 이해되는데 먼저 ‘과학에 대한 철학’은 인식론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것으로서 인식의 근저를 성찰하는 철학이며 둘째로 ‘과학 바깥의 철학’이란 형이상학이라고 불며 과학의 대상이 아닌 영역을 구성하며 인간의 실존, 감정 등에 대해 다루는 철학이다. 마지막으로 ‘과학에 의한 철학’은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이 그 성과를 바탕으로 철학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생물학을 토대로 형성된 철학들과 인간과학을 토대로 형성된 철학들이 이 유형의 철학에 속하며 레비-스트로스가 주장한 구조주의 또한 이 유형에 속한다.

 

(1) 레비-스트로스의 인식론: 초합리주의적 관점

 

레비-스트로스의 인식론은 합리주의로 규정될 수 있는데 이러한 그의 구조주의를 토대로 구성된 인식론은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져 고찰될 수 있다. 먼저, 그는 사물들의 심층이 합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존재론적 믿음을 지니고 인간의 이성이 사물의 심층으로 파 들어 갈 수 있음을 긍정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베르크손의 입장과는 대비되는 것이었다. 베르크손은 존재를 절대적인 질적 풍요로움으로 인식하였다. 그에 따르면 존재는 단순한 존재로 분리되어 인식될 수 없으며 따라서 수학화가 가능하지 않고 또한, 끊임없이 생성하는 근원적인 창조로써 존재하기 때문에 비결정론적으로 열려져 있다.

 

반면에, 레비-스트로스는 베르크손과 같은 기호적 공식화에서 벗어나 질적 창조를 주장한 서구 반합리주의에 대항하는 신합리주의의 연장선상에 서서 과학적 담론들은 세계에 대한 표면적 경험으로부터가 아닌, 일정한 합리적 범주들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심층에 깔려져 있는 일정한 구조를 인간의 이성이 밝혀낼 수 있다는 인식론적 입장에서 실재는 존재의 기본단위로 분할되어 설명될 수 있으며 따라서 양적인 합리화가 가능하고 일정한 법칙에 의해 지배되어 결정론적 차원으로 귀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둘째로, 표층적 다양성은 심층적 법칙성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인식되는데 이는 우리가 감성적으로 확인하는 다양한 현상들은 어떤 일반적 법칙성의 표현들이라는 것을 뜻한다. 베르크손에 따르면 모든 과학의 기호화는 사물의 표층을 추상화한 것에 불과하지만 이에 반해레비-스트로스는 과학의 기호화를 현상들의 표면뿐만 아니라 그 표면의 변화 양태까지 한꺼번에 응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레비-스트로스는 구조들은 단지 현상들을 추상한 것이 아닌 다양한 현실들이 그 안에 응축되어있는 심층적 법칙성임을 강조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합리적인 탐구방법을 선택하였다.

 

마지막으로 레비-스트로스의 합리주의는 현대 합리주의와 같은 연장선에 있으며 따라서 고전적인 형태의 합리주의와는 비교하여 분석해보아야 한다. 현대 합리주의는 고전 합리주의와 실증주의를 조화시키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먼저 데카르트로 대변될 수 있는 고전적인 합리주의는 진리의 씨앗은 우리 의식 속에 관념들로 존재하기 때문에 진리 인식은 인간의 내면성에 존재하는 관념을 직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반면에 오귀스트 콩트로 대변되는 실증주의는 이러한 합리주의를 논박하며 내면성이 아닌 외면성에 인식의 주안점을 두었고 우리에게 드러나는 현상에 기반을 두어 세계를 설명해내려고 시도하였다. 현대 합리주의는 고전 합리주의를 가설을 통한 이성의 구성으로, 실증주의를 객관 세계 속에서의 그 가설의 확인이라는 두 단계를 통해서 대변하며 이 둘을 통합하고자 하였다. 이는 과학은 세계 속에서의 발견이지만 이 발견은 우리 이성의 구성 작용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레비-스트로스의 형이상학

 

레비-스트로스는 전문적인 의미에서 형이상학을 전개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저작들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그의 인간과 역사에 대한 언급들은 그의 시간과 역사에 대한 사상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19세기 이후 시간이라는 개념은 과학과 철학적 사유의 중요한 밑바탕이었으며 인간과학은 또한 역사라는 밑바탕위에서 시간의 축을 따라 전개되었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는 소쉬르의 영향을 받아 시간이라는 개념을 뛰어넘으며 문화의 정체성을 견고하게 떠받치고 있는 구조적 법칙성을 찾고자 시도하였다. 바로 이때의 법칙성을 통해 레비-스트로스가 밝힌 구조들은 문화의 심층을 지배하는 공간적 규칙성을 드러내고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러한 역사에 실제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고를 거부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종합을 꾀했던 사르트르의 역사철학을 비판하였다. 사르트르의 역사철학은 인간을 분석적 이성으로 역사적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러한 과정을 변증법적 이성을 통해 내면화하고 스스로를 주체로서 정립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이러한 내면화 과정을 거칠 능력이 없는 미개인들은 역사를 지닐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는 분석적 이성을 변증법적 이성의 기초라 여기며, 변증법적 이성을 또 다른 이성으로 다루는 것을 비판하며 미개인은 우리와 역사를 분석해내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레비-스트로스는 의미는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없으며 아무런 내재적 의미도 담고 있지 않고 단지 조합됨으로써 의미를 창출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즉, 역사의 의미를 파악하려면 내면성이 아닌 의식 바깥의 구조를 통해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이어서 이러한 그의 생각은 주체철학으로부터 벗어나 탈주체적 철학으로 이어졌다. 이는 우리의 삶이 기반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내면이 아닌 구조이며 우리가 경험하는 개별 사건들은 결국 구조의 표현에 불과하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보아야 할 것 또한 멀리 떨어져서 본 우리의 참모습임을 의미한다.

 

4. 맺음말

 

무질서해 보이는 사회적·문화적 현상을 일관된 질서로 정리시키는 구조주의 이론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획기적인 사고방식이다. 레비-스트로스로 대표되는 구조주의적 사고는 19세기의 서구 전통적 철학의 사유를 뛰어넘는다고 볼 수 있다. 또 세르, 푸코, 데리다, 들뢰즈, 리쾨르, 부르디외가 모두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를 논박하고, 다시 그것을 극복하는 포스트 구조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이라는 사실은 레비-스트로스가 구조주의의 흐름에 기본적인 토대를 제공한 가장 중요한 인물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인식론과 함께 현대 철학적 사유의 기초를 이룬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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