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둥이의 블로그

 

한 문장  요약 (이 텍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라)


인간의 삶은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른다.


남기고 싶은 부분 (본문 중에서 기억하고 싶은 문장) 


1. 이오카스테 “인간은 우연의 지배를 받으며 아무것도 분명히 내다볼 수 없거늘 그러한 인간이 두려워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 있겠어요?”


2. 그 누가 행복으로부터 행복의 허울 뒤의 몰락보다도 더 많은 것을 얻고 있는가?


독서 MAP     


1)이오카스테(와 그의 남편 라이오스)가 아들에게 내린 신탁을 알고 선택한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기본적으로 신을 믿지 않지만, 내가 신화 속 인물이라고 가정하고 감정이입 해본다면 이오카스테의 선택은 충분히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직접 낳은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있겠는가. 아무리 신의 예언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에 나라도 그러한 극단적 선택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 대신 정말 신이 예언한대로의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남에게 맡기거나 멀리 떨어뜨려 놓는 이오카스테의 행위는 나름대로의 괜찮은 대책이라고 생각한다. 

2)테이레시아스는 왜 장님으로 설정되었을까.  


예언가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 ‘눈을 감으면 보인다.’는 얘기도 있듯 눈을 뜨면 보이는 것만 볼 수 있지만 눈을 감으면 뭔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이용한 것 같다.
 
3)오이디프스는 왜 이오카스테처럼 자살하지 않았을까.


A. 자살이라는 것,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인간의 살고자하는 본능은 정말 질기다.
B. 온갖 고통과 비극을 짊어지고도 결국은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운명을 표현한 것 아닐까.
C. 죽는 것보다 눈을 잃은 채 살아가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일이기에 그렇게 설정된 것 아닐까.

자문자답 (이 텍스트를 읽으면서 무엇을 생각했는가?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보고, 대답을 해보라)  


Q. 사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허구의 신화를 우리는 굳이 왜 수 많은 세대에 걸쳐 읽어오고 있는 것인가?


A. 서양의 문화와 사상을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는 현재 강대국,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과 유럽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신화다. 이러한 신화에는 문학, 역사, 음악, 철학 등 서양인들의 다양한 분야의 생활 양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나는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지 않아 신의 이름에 익숙치 않았다. 그래서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며 사람 이름(혹은 신의 이름)을 숙지하는 데에 애를 먹었다. 한 명 한 명 검색해보다가 귀찮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해서 왜 이런 실제 이야기도 아닌 허구적 사실을 열심히 읽어야 하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그래왔는지, 또 그래야만 한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내가 한 명 한 명 검색을 해보니 어떤 신의 이름은 고대 희랍의 어떤 단어의 의미로부터 비롯되었고 또 어떤 신은 현재도 존재하는 어느 지명 또는 문화 등에서 유래된 경우가 있었다. 즉 이야기 자체는 허구이지만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 혹은 지명은 나름의 이유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내가 느낀 것 이외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한 커뮤니티에서 공감한 글의 내용 중, 그리스신화에 ‘인간 본위의 문화’가 살아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리스신화에서의 신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성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인간처럼 싸우고 질투하고 사랑하고 때로는 실수도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인문주의(人文主意)적 신화라 부른다고 한다. 서양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자연을 어떻게 생각했고 신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배움으로써 서양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는 것이다.

Networking (오이디프스왕이라는 텍스트를 자신이 경험한 다른 텍스트들(책, 만화, 영화, 드라마 등등)로 연결해보라.   

 

 

영화 싱글라이더


최근에 싱글라이더라는 영화를 봤다. 대단히 잘 만든 영화라거나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영화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에게 한번 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어쩌면 순간 몰입하고 즐김으로써 소비 되어버리고 마는 오락영화에 비해 더 가치 있는 영화였을지도 모르겠다.


여러분들께서 안보셨다면 스포를 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영화는 비극으로 끝난다. 그것도 정말 어이없는 반전의 비극으로 말이다. 내가 뭐하려고 이렇게 열심히 달리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약간의 허탈함을 주는 기분이었다.


결론만 말하면 2년 간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악착같이 돈을 벌던 여주인공은 한 순간의 거래 실수로 죽음을 맞이하고, 아이와 아내를 호주로 보내고 (그 아내는 호주 남자와 바람이 난다) 기러기아빠로서 보험사에서 압도적인 실적으로 승승장구하던 남주인공은 회사의 파산으로 인해 자살한다. 와이프와의 행복한 가정 생활도 포기한 채 달려오던 기러기아빠에게 주어진 보상은 아내의 배신과 죽음뿐이었다는 것이 정말 허탈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실제로도 그런 일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으며, 또 실제로도 많이 벌어지고 있다고 나를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물론 이 영화는 현재의 행복이라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삶 자체가 고통이고 비극이라고 말하는 오이디푸스라는 작품과 다소 말하려는 바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비극적 결말을 맞은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한번 쯤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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