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둥이의 블로그

이기적 유전자

 

남기고 싶은 부분 (본문 중에서 기억하고 싶은 문장)


(1) 거든의 실험은 충분히 노력하기만 한다면, 때로는 골 바닥에 있는 세포를 도로 올려놓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 여기에 오르간과 어떤 음악이 있다고 하자. 누가 연주자인가? 그리고 누가 작곡가인가? 그리고 지휘자는 있는가?


독서 MAP     


1-①후성유전학의 주요 관점은 무엇인가? ‘콘래드 와딩턴의 후성유전학의 풍경(p.35그림)’을 중심으로 설명해보라 

유전적인 것만으로 어떤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 후성유전학의 연구 대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콘래드 와딩턴의 후성유전학의 풍경을 통해 나름의 설명을 덧붙여 보면 이렇다. 꼭대기의 공은 일반적으로 골짜기가 생긴 방향으로 굴러가게 된다. 이는 곧 세포가 나름의 방식에 따라 어떤 유전자는 켜고 어떤 유전자는 끄는 방식으로 분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든은 충분히 노력하면 이미 골짜기로 굴러가버린 공을 꼭대기로 올려놓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즉 이미 분화해버린 세포라고 할지라도 노력한다면 꺼진 유전자도 켜고 켜진 유전자도 끄는 식으로, 분화하기 전으로 돌아가 다른 방식으로 분화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1-②DNA가 주형이 아니라, 오히려 대본에 가깝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공장에서 주형틀에 재료를 넣기만 하면 완전히 똑같은 형태로 부품이 생산된다. 그러나 DNA는 이러한 주형이라기보다는 대본에 가깝다. 즉 세포가 DNA에 들어 있는 유전 암호를 읽을 때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읽어낸다는 의미이다. 결국 대본이 동일하더라도, 즉 DNA가 동일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읽어내는지는 배우의 몫이거나 세포의 몫이다.‘

2-①‘중국황제와 가난한 농부’의 예는 유전자에 대하여 어떤 상상을 하게 하는가?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었는가? 

가능한 유전자의 조합이나, 조합으로 인한 기능을 따지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온다. 이는 곧 어떤 유전자이냐의 중요성보다 유전자를 어떻게 조합하여 어떤 기능을 하도록 만들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2-②유전자를 ‘책’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생명의 음악’(시스템생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은 무엇인가

‘유전자가 정해지면 이미 바꿀 수 없다.’는 인식을 뒤집고 어떤 유전자를 켜고, 또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유전자 이외에 사람이 겪어온 다양한 환경이나 어떤 사람의 후천적 노력들에 의해 얼마든지, 언제든, 지속적으로 바뀌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3. 과학자들은 유전자의 의미(행동)를 메타포(이기적 인격체, 언덕을 구르는 공, 음악)들로 설명한다. 자신이라면 어떤 메타포를 쓸 수 있을까. 인간에게 있어 유전자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메타포를 설정해보라  

나는 유전자가 ‘스위치’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람별로 어떤 스위치가 좀 더 가까이 있고 멀리 있고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까이 있는 스위치는 조금 켜기 쉬운 스위치이고, 평범하게 살아갈 때 자연스럽게 켜질 수 있는 스위치다. 다만 조금 멀리 있는 스위치는 그것이 켜져서 발현되는 데에 후천적인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켜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멀리 있는 스위치가 켜졌을 경우 이미 켜져 있는 스위치와의 조합 및 상호작용으로 인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는 매우 다양한 경우의 수가 생기게 된다.

자문자답 :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 무엇이 더 지배적일까? 그리고 우리는 이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까?

나는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 중 어느 것이 더 지배적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느 한 쪽이 100%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아마 우리 모두는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 모두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부분이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나는 내 나름의 생각이 있다. 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는 운명론 혹은 결정론적인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미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 보았을 때, 이미 생긴 일에 대해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운명론이나 결정론적인 태도가 되레 도움이 될 때도 있는 것 같다. 과거에 일에 아파하거나 후회하는 일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의 잘못한 일을 반성하는 면에서, 혹은 나를 더 채찍질 하는 측면에서 과거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후천적인 요소에 더 비중을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 과거의 뿌듯했던 기억에 대해서 ‘내가 정말 잘했어’, ‘그건 내 노력으로 이루어진 일이었어!’라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나는 옛날엔 절대적으로 후천적인 부분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자꾸 이미 정해진 방향대로 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한 사람 한 사람의 면면을 알게 되고 나서는 운명론, 결정론적인 생각에 휩싸여 게을러진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Networking :유전자에 대한 대중화된 도그마(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사유)들이 있다. 우리 일상 또는 대중문화에서 이런 사례를 찾아보라. 

암의 유전이다. 나는 이에 대해 전문가는 아니지만, 암을 경험한 사람들 중 정말 높은 비율의 사람들이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다.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아직 암이 발견된 것도 아닌데, 그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이유로 유방을 미리 절제한 일화는 유명하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유전적인 요소가 미치는 범위인지, 그것을 후전적으로 바꾸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는 이 세상 누구도 알기 힘든 것 같다. 다만 개인의 소신과 신념에 따라 선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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