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둥이의 블로그

니체

 

C. 순간의 영원성

니체에게 영원성은 세계를 넘어서 있는 영원이나, 초감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개념의 영원이 아니다. 그는 이 세계 그 자체의 영원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계는 매 순간 어떤 목적 없는 생성이 계속된다. 그 생성은 곧 힘에의 의지로서 매 순간 발현된다. 영원회귀는 생성 즉 힘에의 의지가 생기는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의미이고 여기서 우리는 그러한 순간이 영원하다는 의미에서 순간의 영원성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오, 내가 이러한 예언자의 영혼에 가득 차 있다고 하면, 어찌 내가 영원을 갈망하여 정열에 불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반지 중에서도 결혼 반지를 어찌 갈망치 않을 수 있겠는가 ㅡㅡ회귀를 뜻하는 그 원환을! 이제까지 나는 나의 아이를 낳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 내가 사랑하는 이 여자를 제외하고는. 왜냐하면 오 영원이여! 나는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결혼반지는 둥근 고리 개념의 돌아오는 시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서 사랑을 통해 결혼을 한다는 것은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지점으로서 순간의 영원성에 대한 니체의 언급으로 볼 수 있다. 

위대한 정오란, 인간이 자기의 행로 한복판인 동물과 위버멘쉬의 중간에 서서 저녁으로 향하는 자신의 여로를 자기의 최고의 희망으로서 축복할 시간이다. 그것은 새로운 아침으로 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인식의 태양은 정오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위버멘쉬가 살기를 원한다.’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정오에 갖는 최후의 의지가 되게 하라!

여기서 말하는 정오도 결국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순간을 의미한다. 이는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니힐리즘이 아닌 적극적이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존재로의 가치전환을 해나가는 극복의 시간이다.

 
영원회귀에서 ‘영원성’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순간들이 영원히 돌아오기를 바랄 정도로 가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순간은 유의미하고 필연적이며 영원화될 수 있다. 우리가 이에 대해 쉽게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은 끊임없이 생성만이 반복되는 세계 속에서 인간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냐는 것이다. 영원회귀 사상대로라면 인간의 삶은 고정되지 않은 변화무쌍한 생성만이 되풀이될 뿐인데 말이다.


이러한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영원회귀 사상을 과거의 측면과 미래의 측면에서 각각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과거만을 생각한다면 위와 같은 의문은 유효할 수 있다. 이미 과거에 생긴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생성들이 앞으로도 되풀이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어떤 중요한 가치나 목적이 지속적으로 변한다는 점에서 니힐리즘이다. 니힐리즘 중에서도 정말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고 인간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극단적 니힐리즘이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자. 지금 내가 하는 생각, 결정, 행위 등은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더라도 영원한 생성의 형식으로 반복될 것이다. 니체에 의하면 영원회귀 사상은 인간에게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실존적 결단을 요구한다. 이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지금 결단하는 대로 우리는 미래에 그러한 생성을 되풀이할 것이기 때문에 바로 지금 이 순간 그 중대한 결정을 해 내야만 한다는 점에 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영원이라는 것은 바로 이 순간에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의 결정이 그 끝을 알기 힘든 반복되는 생성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를 떠올렸을 때 생길 수 있는 니힐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만 생각해내면 된다. 그 방안에 대한 훌륭한 의견이 여기에 있다.

아직 창조되지 않은 것이 일종의 미래적 가능성으로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는 쉽다. 그러나 이미 창조된 것, 그것은 흘러가버린 시간으로서 우리의 과거에 움직일 수 없는 사건으로 남겨진 것 아닌가? 영원회귀는 이 실체화된 시간을 하나의 새로운 생성으로서 만드는 교의, 과거에 자유를 되돌려주는 교의이다.……시간은 실체화된 사물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찍어버린 필름처럼 변경할 수 없이 고정된 슬라이스가 아니라 현재의 순간에 발생하는 생성작용을 통해 다시 새롭게 빚어지는 미결정의 시간, 자유의 시간이다.……현재는 과거와 상호작용한다. ……현재와 미래가 자유로운 시간이기 위해서는 과거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는 실체화된 시간이 아니라 현재의 단 한 번의 생성으로 완전히 새롭게 뒤바뀌는 시간이다. 단 한 번의 현재적 생성에 의존해 전 과거가 뒤바뀌는 것이라면 그런 현재의 시간은 가히 혁명적 시간이라고 불릴 만하다.

Ⅴ. 결론

본 논문에서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신의 죽음과 위버멘쉬, 형이상학적 이분법과 힘에의 의지에 대한 내용을 먼저 제시했다. 그리고 영원회귀 사상에 대해 탐구할 때 생길 수 있는 니힐리즘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또 순간의 영원이라는 생각을 통해 니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등을 살펴보았다. 이제 남은 의문은 우리는 왜 영원회귀 사상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것을 통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한 것이다. 


앞에서 니체의 영원회귀사상이 극단적인 허무주의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고정되지 않고 항상 변화하는 상태만이 영원히 반복되기 때문에 인간의 삶이 덧없는 신기루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매순간 또 다른 사람으로 변해 간다면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만약 우리가 영원회귀 사상을 갖게 된다면 아무런 의욕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삶의 목적도 없어질 수 있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노력했지만 오늘 목표를 가졌던 내가 내일은 더 이상 오늘의 내가 아니라면 지금의 어떠한 다짐도 나중엔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영원회귀 사상은 오히려 삶을 부정하도록 만들지 않을까? 오히려 삶을 긍정하기 위해 영원회귀 사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삶을 긍정한다는 것은 그저 무턱대고 삶을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삶이 끔찍하다 할지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기 있게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성의 세계가 계속 변화하고 그로 인해 삶이 영원히 반복될지라도 니체는 그런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고 말한다. 나아가 덧없는 삶의 매순간들에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아가라고 한다. 


니체는 이 순간 겪고 있는 찰나의 삶에서 그러한 삶이 수없이 계속 반복되기를 원할 만큼 삶의 매순간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만약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영원히 반복해서 사랑하기를 원할 만큼 그 사람을 사랑하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매순간을 긍정하며 매순간의 영원회귀를 바랄만큼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니체에게 의미 없는 삶의 순간이란 없으며 모든 순간이 의미 있고 가치가 있다. 영원회귀 사상은 극단적인 허무주의일수도 있지만 반대로 삶에 대한 절대적인 긍정의 사상일 수도 있다. 두 가지 기로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고통스러워하던 양치기는 뱀의 대가리를 물어뜯어 뱉었다. 즉 영원회귀 사상의 허무주의를 극복한 것이다.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삶을 긍정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지어 본 적이 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것이 바로 삶을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사람의 표정일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깨달아야 할 것은 ‘영원회귀 사상’을 견디는 것, 그리고 삶을 긍정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이다. 시커먼 뱀의 대가리를 물어뜯기 위해선 커다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용기와 결단은 아무리 부정적인 삶이라도 받아들이고, 매 순간의 영원회귀를 바랄만큼 삶을 사랑하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서 살아가는 자세를 의미한다. 니체는 이렇게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의 힘에의 의지를 최고조로 상승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혐오스럽고 덧없는 삶 전체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전환시킬 정도로 말이다. 끝없이 자신의 삶의 모든 순간을 긍정하고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는 사람, 그렇게 끝없이 자기 자신을 극복해나가는 사람, 그래서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지어 본 적이 없는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사람, 이렇게 영원회귀 사상을 허무주의에서 삶에 대한 사랑으로 바꾸는 사람을 니체는 위버멘쉬라 부른다.

☐ 참고문헌

단행본

고병권,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린비, 2003.
김면수, 『(만화)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김영사, 2009.
백승영, 『유고』 (해제),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4.
안성찬, 『즐거운 학문·메시나에서의 전원시·유고』, 책세상, 2005.
진은영,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그린비, 2007.
Friedrich Nietzsche,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사순옥(역), 흥신문화사, 1995.
Friedrich Nietzsche, 『권력에의 의지』, 강수남(역), 청하, 1998.
Friedrich Nietzsche,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김정현(역), 책세상, 2002.
Friedrich Nietzsche, 『비극의 탄생』, 박찬국(역), 아카넷, 2007.
Friedrich Nietzsche,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두행숙(역), 부북스, 2011.

논문

김윤령, 「니체에서의 영원회귀와 영원성의 문제」, 2004
박진성, 「Nietzsche의 ‘영원회귀’사상에 따른 니힐리즘과 그 극복」, 2003
정동호, 「영원회귀 문제」,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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