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둥이의 블로그

 

영화 <완득이>

 

공부는커녕 주먹질만 하고 다니는 완득이는 불행해 보였다. 바보 삼촌과 함께 깔창을 팔러 다니며 힘들게 돈 버는 장애인 아버지, 한국이라는 타지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는 어머니, 거친 입담과 가르치는 일에 의욕이 없어 보이는 담임선생님. 완득이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열심히 살아가며,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아간다.

 

한 동네에 사는 그들은, 문화센터를 만든다. 아버지와 삼촌은 춤을 가르치고, 어머니는 요리를 가르치고, 담임선생님은 문화센터를 운영하는데 힘을 쓴다.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또 남들이 보기에 불행해 보일 수 있는 그들이, 사회적 약자로 취급받는 그들이 회식자리를 통해 소속감을 가지고, 마음을 모아 함께 새로운 일을 시작한 것이다. 이 일은 거창하지 않지만 참 행복해 보였다.

 

행복이라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하며, 특별한 것에서 행복을 찾기보다 주변에서 그냥 놓쳐버릴 수 있는 것들을 잘 돌본다면 행복해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가 강요받는 사회적 성공을 통한 부, 명예, 권력의 획득보다, 이런 소박한 행복을 하나하나 고스란히 느끼는 것이 더 행복할 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완득이가 베트남인 어머니를 진정 자신의 어머니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데다, 다른 나라 사람인 어머니지만 결국 완득이는 자신을 낳아준 사람인 어머니를 받아들인다. 이는 어머니에게 신발을 사드리고, 둘이 무슨 관계냐고 묻는 신발가게 주인에게 ‘어머니’라고 당당히 말하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결정적으로 어머니와 포옹하는 장면은 국가나 인종에 관계없는 어머니와 아들간의 사랑을 보여준다. 점점 문화는 다양해지고,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다문화 가족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와 피부색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더라도 그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차별하지 않는 것이 조금 더 성숙한 세계 속 시민의 모습이 아닐까?

 

이 영화는 관객들이 사회적 약자에 대해 공감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영화를 통해서라도 외국인 노동자나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감능력이 더욱 향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제도나 사회적 장치들이 개선된다고 해도, 그 사회 속 사람들에게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 없다면 사회적 약자들은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결국 사회적 약자들은 계속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세계 속 우리나라의 평판도 좋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공감하며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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